어릴 적 그는 여느 아이들처럼 의례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차이가 있다면 피아노 건반을 만지는 순간부터 빠져들어 수업이 끝난 후에도 혼자 남아 연습을 한 점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밤을 새며 들었을 정도였죠. 그때, 피아노와의 운명을 직감한 것 같습니다.” 그는 국문과 교수인 아버지와 드라마 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예민한 감성을 물려받아 피아니스트로서의 또 다른 재능을 갖추게 되었다.
피아노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어린 나이에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가 빈 국립음대에 최연소 입학을 했다. 당시 해외 유학은 지금처럼 쉬운 일도, 부러움을 사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보다 국제전화비용도 훨씬 비쌌고 네트워크 기술도 발전하지 않은 터라 그에게 빈은 오지와도 같았다. “음악하는 사람 중에는 대부분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 많지만, 저는 선천적으로 너무나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는 사람 만나는 것을 최대한 절제하고 연습실에 자신을 가둬야 하는 직업이죠. 연습을 하는 순간은 행복했지만, 제가 14살에 빈에 가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그것을 참아야하는 혹독한 외로움이었습니다.” 빈은 이처럼 그에게 외로움을 주기도 했지만, 영광의 도시이기도 했다. 그는 각종 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음악의 도시 빈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쇼팽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정원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쇼팽’이다. 그의 1, 2집 음반과 국내 데뷔 리사이틀 음악이 쇼팽이었고, 쇼팽콩쿠르 에피소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2000년 쇼핑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심사위원은 “나에게 있어서 우승자는 김정원이다”라고 말하며 이례적으로 우승자가 아닌 그를 대회 후 폴란드음악축제에 초청했다. 이 쇼팽콩쿠르 에피소드로 김정원은 더욱 유명해졌다.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쇼팽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에게 잘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주관적인 음악 해석이 쇼팽과 잘 맞았죠. 그러나 계속 쇼팽을 고집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쇼팽 음악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아니라 기술적인 테크닉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래서 지금은 쇼팽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그의 음악을 멀리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이번 전국투어공연에서는 쇼팽의 음악이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었다. 자신이 잘하는 음악만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애정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그의 음악인생에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1995년 대학교 졸업 연주다. 너무나 열심히 연습해서 준비한 졸업 리사이틀은 전원의 심사위원 교수에게 호평을 받았고 최우수로 선정되며 심사위원과 청중은 물론 본인에게도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적어도 그의 담당교수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뿌듯한 기분으로 있는데 선생님께서 오셨어요. 그리고는 제 공연에 실망이 크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정말 청천벽력 같았습니다. 너무나 자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선생님의 한 마디에 고민과 원망으로 그날 밤을 샜습니다.”
다음날 그의 선생님은 “너의 연주는 누가 들어도 참 재주있는 솜씨였지만, 네가 바흐, 베토벤, 쇼팽을 연주하는 동안 나는 바흐도 베토벤도 쇼팽도 듣지 못했다. 오직 피아니스트 김정원밖에 안 보였다. 계속 너는 너의 솜씨 자랑뿐인 향수냄새만 짙은 연주를 했다”고 충고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평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선생님의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연이 음악을 위한 연주인지 피아니스트 자신을 위한 연주인지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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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면 과시욕이 오르고 청중들을 집중하게 만들고 싶죠. 하지만 청중의 반응을 유도하는 스킬보다 음악의 본질적 아름다움 속에서 표현되는 진실함 감정이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무대에 선다면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말초적인 자극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재능의 남용이라고 하는 그는 그에게 이러한 조언을 해 준 스승을 만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히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의 마지막 장면에 출연해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대학동기인 이병우 음악감독과의 친분이었다. 처음에는 몇 번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영화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갖는 파급효과를 생각하게 되었다. 클래식음악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 반해 영화는 힘을 갖고 있고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최초로 클래식을 다룬 영화로서 대중들에게 클래식을 보급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화 속 경민의 모습에서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그였지만 어린 나이에 항상 연습을 하는 것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주위의 기대 또한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지금까지 피아노를 놓지 않은 것 같네요.”
<김정원과 친구들>이라는 공연으로 그는 크로스오버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 역시 대중가요와 팝송을 좋아하고 그 음악의 장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크로스오버를 할 생각은 없으며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각 분야의 전문가는 따로 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공연을 하게 된 계기는 크로스오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친구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김동률 씨와 서로의 음악을 들려주고 좋은 음악들을 추천해주곤 했어요. 함께 어울릴 때면 저는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동률 씨는 자신의 음악을 불러줬죠. 그럴 때마다 이것을 공연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 <김정원과 친구들>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린 이 공연은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가수 하림, 첼리스트 최정은, 색소포니스트 손성제, 베이시스트 정재일 등 따뜻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포근한 저녁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공연에서도 아카데믹한 레퍼토리에 욕심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있어요.” 유럽에서는 클래식 마니아 층이 크기 때문에 곡의 선택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마니아 층이 상대적으로 적고 너무나 박식한 마니아 층과 이로 인해 더 위축되는 대다수의 사람들로 나뉘기 때문에 레퍼토리 선택에서 곡의 이해를 많이 염두에 둬야한다. 그는 클래식에 학구적인 연구의 아름다움을 받쳐가는 것도 좋은 자세이지만, 음악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클래식 알리기 프로젝트로 누구나 알기 쉬운 곡부터 공연하며 청중들이 나이를 듦에 따라 클래식에 대한 안목도 같이 자라나길 바란다고 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초보적 클래식 레퍼토리로 공연을 하지만 청중들에게 천천히 깊이 있는 부분까지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게끔 하고 싶어요. 난해하다고 여기는 클래식 음악을 누구나 좋아하게 만들고 싶기도 하고요.”
김정원은 이번 달부터 12월까지 전국투어콘서트를 연다. “지방팬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오시는 어려움을 덜어드리고 지역문화발전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번 공연이 피아니스트 김정원을 알리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 보급을 위한 공연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한 뜻을 담아 이번 콘서트는 무소르크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등 청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짜여졌다.
그는 앞으로의 전국투어 콘서트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즐기듯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연말까지 한국에서의 공연을 마치면 내년에는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내년에는 체코 국제 음악제에서 전설적인 헝가리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졸탄 코치쉬와 함께 체코 필하모니와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또 일본에서 전국투어콘서트를 가질 계획이며 미국에서는 카네기홀에서 첫 데뷔무대를 가진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보여준 음악에 대한 애정과 진지한 고민은 스타 피아니스트 김정원을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해 열정으로 가득 찬 신인으로 보이게까지 했다. “저는 최소한 50살이 넘어야 그 사람의 음악이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연륜의 가치를 갖고 성장하길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그는 자신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접한 사람들과 함께 음악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가며 나이 들고 싶다고 했다. 바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을 향한 다짐에 가까운 그의 말을 들으니 그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피아니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